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우스 마리우스 (문단 편집) === 사투르니누스와 마리우스의 몰락 === 사투르니누스는 기원전 99년에 열린 호민관 선거에 다시 나서 당선된다. 뒤이어 그는 마리우스의 열렬한 추종자인 전직 법무관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글라우키아]]를 집정관으로 밀었는데 선거를 주재했던 집정관 마리우스는 글라우키아가 집정관 선거에 나올 법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그의 후보 등록을 거부한다. 그러자 사투르니누스는 여기서 과도하게 나갔는데, 그는 글라우키아의 강력한 라이벌이였던 집정관 후보를 때려죽인 다음 글라우키아의 후보 등록을 가능케 하기 위해 수정 법안을 민회에 제출한 것이었다. 원로원은 이에 분개하였고[* 사투르니누스에게 맞아죽은 집정관 후보는 원로원 의원이었고, 또한 사투르니누스의 행동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가이우스 그라쿠스 때에 이어 두 번째로 원로원 최종 권고(SENATUS CONSULTUM ULTIMUM)를 발의한다. 집정관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와 그의 추종세력을 체포해서 제거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의 세력이였으므로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제거해야 했다. 이는 마리우스에게 있어 매우 난처한 것이었다. 사투르니누스가 원로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했던 것은 순전히 마리우스가 군사력으로 뒤를 받쳐주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지나칠 정도로 행동하여 원로원을 자극하였고 마침내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시킨 것이었다. 여기서 마리우스는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사투르니누스의 행동에 제동을 가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투르니누스의 행동에 끌려다녔던 것이었다. 사투르니누스의 법안은 마리우스가 원했던 것 이상으로 자극적이었고 또한 급진적이었다. 이 때문에 마리우스는 원로원의 불신을 샀고 그는 이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었어도 마리우스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투르니누스의 행동을 방조하고 묵인하였다. 그 결과 원로원 최종권고가 발의되었는데 마리우스는 수도 로마에 머물면서 이러한 결의가 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군사력과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현직 집정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결의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이것을 방관하였다. 원로원 최종권고의 발동으로 인해 마리우스는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막다른 상황에 몰린다. 원로원의 명령대로 사투르니누스를 잡아다 처형한다면 마리우스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그의 지지자에 대한 배신이므로 마리우스의 정치생명은 끝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투르니누스를 지지하고 원로원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이는 로마의 구체제에 대한 반역인 셈이었다. 당시 현직 집정관이던 마리우스에겐 실질적인 군사력이 있었는데 그의 퇴역이 결정된 병사들은 불과 1년 전까진 현역이였고 상당수가 로마 시내에 머물고 있었다. 게다가 마리우스는 5년에 걸쳐 사실상의 독재관이나 다름없는 권한으로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준비해왔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마리우스였으며, 이런 마리우스에게 그의 정치생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끝장내라는 주문을 원로원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권위를 믿은 것이었다. 때문에 훗날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가 그리했듯 마리우스가 군사력을 바탕으로 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리우스는 원로원의 요구대로 군대를 이끌고 사투르니누스를 체포한다. 사투르니누스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 마리우스에게 순순히 투항하였고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의 그의 지지자들을 모두 잡아다가 신전에 가둬두었다. 이때 원로원 지지파들은 몰려가 신전 천장에서 돌과 기왓장을 떼네 신전에 있던 사람들에게 마구 던졌고 결국 사투르니누스는 목숨을 잃는다. 마리우스는 이런 것을 방관하였을 뿐이었다. 이날 사투르니누스의 죽음과 함께 마리우스의 정치생명도 끝나게 된다. 마리우스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으며 마리우스에게 원로원의 결의를 수호한 것에 대해 원로원은 감사 표시를 하였을 뿐 곧 잊혀지게 된다. 원로원 의원들에게 있어 시민의 지지와 군대가 없는 마리우스는 단지 '한창 때 잘나갔던 시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리우스가 이렇게 순순히 원로원의 명령을 들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끝장낸 것은 아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군인으로서는 유능하였으나 정치가로서는 유능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때문에 부유층, 기득권을 대표하는 옵티마테스, 서민과 중산층을 대표하는 포풀라레스와의 알력을 조정하는 섬세한 일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결과 6번째 집정관이 만료되자 마리우스는 더이상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